알려줄게) 이 여행기는 2008년 8월부터 9월까지 30일간의 한국여행을 담은 #자전거 여행기입니다.
폭우 속에서 눈을 감은 채 첫 캠프의 아침이 밝았다.
다행히 밤새 폭우는 거짓말처럼 맑다.
졸린 눈을 비비며 아침 식사를 준비했다.
사실 준비는 말할 것도 없다.
어제 먹고 남은 밥에 육볶음 통조림과 이모가 준비해준 옥수수로 아침을 때웠다.
제대로 자질이 부족한 탓인지, 어떤 맛인지도 모르고 입 속으로 밀어넣었다.
아침식사 후 텐트를 걷고 설거지도 하고 세수도 했다.
한여름이지만 새벽에 씻을 물은 차갑고 아삭아삭 씻을 뿐이다.
세수를 마치고 빨래까지 빨았다.
빨래는 오토바이 박스에 빨래집게로 고정하고 초등학교를 나와 국도 7호선을 따라 포항 방향으로 곧장 올라간다.
경주와 마찬가지로 갓길이 넓어져 있어 부담 없이 달릴 수 있다.
글로벌 포항 입성한다!
여행 중 처음 만난 터널, 전국 일주일 전 예행연습 차원에서 부산에서 창원에 다녀올 때 터널을 통과한 경험이 몇 번 있지만 여전히 터널을 달리는 것은 무섭다.
터널 안은 갓길도 거의 없어 터널 특유의 ‘웬’하는 소음은 사람을 심리적으로 압박하기에 충분하다.
후미등을 깜박이 모드로 만들어 소음을 잊기 위해 큰 소리로 노래하고 달렸다.
나름대로의 극복 방법이다.
터널을 빠져나가자 구룡포를 알리는 이정표가 나타났다.
호미곶으로 가기 위해 구룡포가 표기된 국도 31호선을 빠져나갔다.
터널을 빠져나가자 시원하게 뻗은 강을 지나는 다리가 나와 다리를 따라 강을 건넜다.
다리를 지나자 은근히 오르막길이 이어졌다.
얼마나 오르막길을 달렸는지 내리막길로 바뀌었다.
여행 3일째, 병원에 갈뻔했어!
!
내리막길을 신나게 내려오니 내려오는 갓길 앞이 뭔가 이상했다.
속도를 줄이고 천천히 다가가면 배수구에 뚜껑이 없다.
속도 조절하면서 천천히 내려와서 다행이야.아찔한 순간이다.
저 배수구에 갇혔다면 여행 3일 만에 병원 신세를 졌을지도 몰라. 온몸에 소름 돋았어. 가슴을 쓸어내리며 계속 호미곶을 향해 달렸다.
국도31호 마지막에 도착했을 때 구룡포로 빠지는 길이 폐쇄되고 공단 방향으로만 나갈 수 있게 되어 있다.
일단 공단 방향으로 돌려 계속 움직였다.
너무 예뻤던 곳공업 단지에 도착하면 공단의 벽면을 가득 메운 덩굴이 셔터를 누르게 했다.
삭막한 공장 벽에서 덩굴이 그림처럼 감싸고 있는 것이 이질감이 있듯이 예쁘다.
쉴 곳은 아니었지만 그림자도 있고 배경이 너무 깨끗하고 물도 마시고 잠시 쉰다.
그러나 공단이라 그런지 트럭 같은 대형 화물 차량이 많고 차로도 보도에서도 자전거가 다니려면>이었다.
차도는 대형 차량의 난폭 운전과 위압감, 매연에서 위험하고 보도는 상당히 받고 폭이 좁은 달리기에 불편했다.
대형 차가 내뿜는 크에크에항 매연에 크에크에쯔 소리를 내며 길가에 빠듯한 공단을 벗어났다.
당시 무엇을 올렸는지는 모르지만 어느 트랙에서 나는 냄새는 정말 더러워서 구역질이 나서 도저히 그 트럭 뒤로 이동할 수 없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기다리고 다시 페달을 밟았다.
물을 보충해 주신 포항남부소방서공업 단지를 벗어나고 남은 물통의 물을 보충하기 위해서 적당한 곳을 물색하면서 계속 달렸다.
한참 달리면 포항 남부 소방서가 보였다.
곧장 들어가서 사정을 하자 기꺼이 물을 가지고 가려고 내 줬다.
수통 가득 물을 받고 감사 인사를 하고 소방서를 떠났다.
국도 31호선을 타고 달리기를 하면 호미곶 방향의 지방도가 표시된 이정표가 나온다.
노파심 인근 노점상 아주머니를 듣고 호미곶의 방향에 들어갔다.
여기에서 천국과 지옥의 공존의 시간이었다.
“에메랄드 빛의 해변을 따라서 위치하는 해안로를 달리는 기쁨이 천국이면, 이어지는 오르막 길과 내리막은 지옥이었다”공단을 빠져나와 얼마 남지 않은 물병의 물을 보충하기 위해 적당한 곳을 물색하며 계속 달렸다.
한참을 달리자 포항남부소방서가 보였다.
곧장 들어가 사정을 말하자 기꺼이 물을 가져가라고 허락해 주었다.
물병 가득 물을 받아 감사 인사를 하고 소방서를 떠났다.
국도 31호선을 따라 계속 달리다 보면 호미곶 방향 지방도가 표시된 이정표가 나온다.
혹시 모르니 근처 노점상 아주머니에게 물어보고 호미곶 방향으로 들어섰다.
지금부터가 천국과 지옥의 공존의 시간이었다.
에메랄드빛 해변을 따라 위치한 해안로를 달리는 기쁨이 천국이라면 이어지는 오르막과 내리막은 지옥이었다.
에메랄드빛 바다가 인상적인 호미곶으로 가는 길처음 오르막길을 오르며 나타난 에메랄드빛 바다는 마치 외국 어느 해변을 달리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이국적이었다.
에메랄드빛은 원래 푸르스름한 바다빛을 발했을 것이다.
그러나 하늘을 가득 메운 구름으로 더 이상 푸른 하늘의 푸른 빛을 받을 수 없었던 바다는 오히려 보란 듯이 하늘을 향해 아름답게 반짝이는 에메랄드빛을 발하고 있다.
그러나 이어지는 오르막 내리막이 반복되는 롤러 코스트 같은 길은 나를 울렸다.
특히 와고 면 방향의 오르막은 끝이 없다고 느낀 지옥 같은 최악의 코스로 기억에 남는다.
오다 카라면(테보묘은)에 오르기 전에 서울에서 이곳까지 자전거로 달려온 여행자를 만났는데 그는 “함께 올라가” 하고 앞장을 섰다.
그러나 곧 그는 내 앞에서 사라졌다.
그 오르막은 갓길도 좁은 오르막 길은 쉼 없이 반복되면서 그의 자전거 뒷바퀴는 바닥에 본드라도 붙였는지처럼 고생하고 굴리며 페달의 사용법이 무색할 지경 좀처럼 앞으로 나가지 못 했다.
머리를 부딪치고 곧 숨이 차게 페달을 굴려때 모터 사이클의 큰 엔진 소리가 들렸다.
얼굴을 들고 희미한 눈으로 앞을 보면 모터 사이클을 몰던 운전사가 왼손을 올리고 엄지를 내며 나를 지나갔다.
어떤 의미에서 아무것도 아닌 제스처였지만 그의 제스처에 기운을 낼 수 있었다.
가보고!
!
▲정상에서 내 애마 ‘철수’지옥 같았던 오르막길이 끝나고 마침내 정상에 올랐다.
마루에 널브러져 앉아 물을 따랐다.
몸은 땀에 물들어 엉망이고 다리는 경련이라도 한 듯 부들부들 움직이는 것이 멈추지 않는다.
숨이 정상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출발했다.
다이호 면을 알리는 이정표와 함께 호미곶 해맞이 공원까지 앞으로 6.5km 있다고 알리는 이정표가 나란히 있다.
그리고 1시간 정도 호미곶에 충분히 도착할 수 있다.
곧 점심 시간이지만 1시간이면 충분할 것 같아, 호미곶에 가서 먹는 양식으로 달리기로 한다.
그러나 공복 상태에서 페달은 복부의 근육에 따라서 위를 자극시키고 위액 분비를 촉진시키고 나의 대뇌에서는 밥 생각으로 덮어 하늘의 구름은 많이 담은 머슴 밥처럼 떠올랐다.
결국 밥을 먹기 위해 한 횟집에 들어갔다.
처음에는 일반 식당을 찾았지만 호미곶으로 가는 길의 식당은 대부분 횟집으로 구성되어 있어 부득이한 결정이었다.
회덮밥 하나를 주문하고 화장실에 들어가 상의를 벗고 혼자 등목했고 세수도 하고 뜨거워졌다.
그리고 물을 차례차례 들이키고 나니 더위가 조금 누그러지는 것 같았다.
주문한 회덮밥 나왔어. 초고추장을 넣고 섞으면 맛있는 회덮밥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최고의 회덮밥!
최고의 회덮밥!
그리고 매운탕까지 얼큰한 국물에 두부와 머리살을 발라 먹으면 정말 소주 한 잔이 절실하다.
식당 앞에서 보이는 시원한 바다는 맛있는 회덮밥을 더욱 맛있게 해준다.
식사를 마치고 다시 화장실에서 등목한 뒤 호미곶으로 향했다.
▲ 수리암호미곶으로 가는 길에 만난 독수리바위, 오랜 세월 파도와 바람에 의해 깎이고 깎여 독수리 모양의 바위가 되었다고 한다.
독수리 바위에서 보는 석양이 장관이라고도 했다.
보면, 악보.호미곶으로 향하는 마을 거리는 광복절이라 태극기로 물결친다.
마을을 지나자 호미곶의 상징인 상생의 손길이 등장했다.
상생의 손을 배경으로 철수와 함께 사진을 남겼다.
불과 여행 3일째이지만, 장갑을 낀 부분과 햇빛에 노출된 부분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잠시 사진을 찍어 호미곶을 구경하고 있다고 누군가가 말했다.
“어라?지금 도착했습니까?”누구냐고 묻자 아까 길을 조금이라도 함께 달린 서울에서 온 여행자였다.
“아, 네. 점심도 먹고, 보시다시피 자전거에 짐도 많아서 지금 도착했네요 “그는 “서울에서 여기 호미곶까지 최종 점이므로, 이제 서울로 돌아가”이라고 말했다.
돌아오는 것은 친구가 태워다 준다며 지금은 친구의 차를 기다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에서 왔다면 강원 진부령(·징브료은)도 넘어온 것이라고 생각하고 진부령이 여기 호미곶의 오르막 길 중 어떤 것이 힘들었느냐고 묻자 그는 “호미 곶이 갓길도 좁은 오르막도 많고 더욱 힘들었던 “이라고 말했다.
그의 대답에 내심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호미곶을 넘어 와서 진부령만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 그랬다면 그의 친구가 호미곶에 도착했다.
무사히 완주하겠다며 마지막 인사를 하는 그와 헤어졌다.
사진을 찍으며 호미곶 일출광장을 걷고 있는데 아까 여행객이 다시 찾아왔다.
그는 커피 하나를 건네며 다시 한번 화이팅을 외치고 준다.
“감사합니다.
”여행을 하면서 좋은 분들을 계속 만나게 되므로, 여행의 긍정적인 이미지가 더욱 짙어진다.
호미곶에서 힘들었지만, 즐거웠던 추억을 담아 구룡포로 향했다.
호미곶에서 구룡포까지는 음악을 틀고 함께 부르며 달리던 탓인지 생각보다 빨리 도착할 수 있었다.
도로도 좋지 않았는데 호미곶에서 들뜬 에너지와 귓속에 울리는 신나는 음악, 시원한 바다와 바람이 한층 가볍게 페달을 문지르게 했는지도 모른다.
구룡포에 도착하여 입구에 있는 매점에서 구입한 음료수 1통으로 목을 축이고 구룡 포해 해수욕장에 들어왔다.
오늘이 여행 사흘째인지 아는지 구룡포 하늘에는 갈매기 세 마리가 카메라에 잡혔다.
구룡포해수욕장의 넓은 백사장을 담고 싶었지만 백사장을 따라 텐트가 빽빽이 자리 잡고 있어 해수욕장 맨 끝에서 해변을 따라 한 장 남겼다.
며칠 만에 많이 탔어.나도 구룡포를 배경으로 한장 남겼다.
구룡포는 부산 친구들의 추억이 깃든 곳이라 술만 마시면 술의 안주 삼아 그 때의 일을 하나 둘 해결하는데 구룡포라는 이름만으로도 정감이 솟아나는 곳이다.
그래서 더 오고 싶었는지도 모르고. 날도 저물어 가고, 오늘은 구룡포 근처에서 야영을 하기로 했다.
처음 찾은 것은 어느 고등 학교에 다녔으나 물의 공급이 중단됐다며 캠프를 포기하고 나왔다.
캠프하는 것은 상관 없지만 물이 안 나와서 마음대로 한다고 했지만, 씻고 싶은 마음이 절실했기 때문에 다른 곳을 찾아야 했다.
수위 아저씨는 근처에 초등 학교가 있다고 위치를 귀띔했다.
수위 아저씨가 가르친 초등 학교에 도착하고 교무실에 있는 선생님에게 부탁하면, 교장 선생님이 부재에서 캠프가 수 없다고 거절했다.
“에이!
왜 교장 선생님이 야영을 허용할 것인가? 재우기 싫으면 싫다고 말할 것이다” 하는데 그 후 학교에서 야영하기 위해서는 정식으로 교장 선생님의 승낙이 있어야 한다고 한다.
캠프를 거절한 선생님은 자기 직무에 충실했을 뿐이다.
어쩔 수 없이 구룡포에서 포항 시내로 이동한 후 자리를 잡아 두기로 했다.
호미 곶을 오르는 것에 지친 나의 다리는 생각도 하지 않는 오르막이 국도 31호선 부근에 펼쳐진다.
구불구불 오르막길을 오르는데 날도 저물어 빨리 움직여야 할 것 같았다.
배도 고프고 학교에서도 캠프를 거절당해서 슬펐다.
다행히 겨우 오르내린 이 오르막 이후로는 그리 험난한 구간 없이 포항 시내까지 들어올 수 있었다.
사흘째 최고속도 48km/h로 최고속도 경신도 했다.
그러나 그보다 배고픔과 야영지를 해결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포항의 상징 포스코포항 시내에 가까워지면서 포스코의 위력이 새삼 느낀다.
수 블록을 끼고 포스코가 위치했다.
정문을 지나면서도 “왜 남의 회사를 찍는가”라는 생각에 지나치며 마지막으로 한장 넣어 봤다.
포스코 일대는 퇴근 시간이라 차도 많고 자전거로 빠질 사람도 많았다.
포항 시내에 도착, 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해결하고 다음 목적지를 구상했다.
처음 여행하면서 계획했을 때는 동해 묵호항을 이용하고 울릉도에 들어가기로 했지만 포항 항에서 출발하기로 해서 포항항으로 이동했다.
도착한 여객 터미널은 당연하겠지만 늦은 시간이라 굳게 닫히고 있었다.
여객 터미널의 위치는 확인하고 야영지를 결정해야 했다.
무리한 오늘의 일정으로 몸은 피곤해서 금방이라도 옆으로 되고 싶었다.
여객 터미널 근처에는 민박, 여관 등 숙박 시설은 많으나 단 하루 캠핑해서 비싼 숙박 시설을 이용하지 못 했다.
해안로를 따라서 초등 학교를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곧 초등 학교를 찾아 뛰었지만 좀처럼 초등 학교를 찾지 못 했다.
“아, 포항이란 도시는 나에게는 정말 힘드네.”해안로를 따라서 막다른 골목까지 달리고, 다시 돌아오는 길에 처음에는 보지 못한 초등 학교의 팻말을 보게 됐다.
사막에 오아시스 같은 초등 학교의 팻말이었다.
초등 학교를 가리키는 팻말의 방향에 따라서 초등 학교에 도착했다.
학교 뒤편에 수위실의 불이 붙어 있었다.
” 계십니까”전기는 붙어 있는데 대답이 없다.
조금 열린 창문 틈으로 들여다보면, 사람이 없다.
어디 잠깐 외출한 듯했다.
잠시 기다리다 먼저 씻고 보려구, 코펠을 꺼내고 수도 주변에 가서 코펠을 바가지에 퍼졌다 몸을 씻었다.
씻고도 수위 아저씨는 돌아오지 않아 텐트를 치기로 했다.
잠시 텐트를 설치했으나 뒤에 누군가가 말했다.
“네?누구세요?”한 남자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서 뒤를 돌아보니, 수위 아저씨 같았다.
사정을 말해서 계속 기다려도 오지 않고 텐트를 치게 됐다”이라고 말했다.
수위 아저씨는 ” 괜찮아”과 캠프를 허용하고 얼음 물도 가져다 주었다.
자신도 부산 출신이라며 젊은 시절에 이렇게 여행하는 것은 귀중한 것이라고 격려했다.
더 필요한 것은 없냐고 물어보고, 캠핑을 허락했다만으로도 감사하다”라고 인사했다.
실제로 이 때 캠핑할 수 있는 장소를 발견한 것만도 고마울 따름이었다.
천막을 설치하고 짐을 천막 속에 몰아넣고 잠자리에 들었다.
그리고 두번째 캠프의 밤이 깊어졌다.
돌이켜보면) 멋진 바다 풍경, 그러나 엄청난 오르막의 2가지가 어우러진 곳, 몇년이나 지났지만 에메랄드 빛 바다에 빛나는 햇빛은 아직 눈을 감고 생각하면 눈앞에 어른거리는 것 같다.
힘든 와중에도 쭉 눈이 갔던 포항 바다 에메랄드빛에 멍한3일차 이동경로)경주-포항